본문 바로가기

인문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출처: 알라딘

지은이:: 김연수

1998년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둔 뒤 집에서 놀다가 시간이 남아도는 바람에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소설을 쓰는 고통 정도는 웃으면서 이겨낼 수 있게 됐다.

「원더보이」「밤은 노래한다」「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등 1994년부터 지금까지 열 권이 넘는 소설을 발표했다. 

::감상::

청년이 된 나는 모든 스포츠를 경멸했다. 그건 달리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자가 된다는 것, 그리고 이 패배자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
내게 스포츠란 그런 의미였다.                   p13 (주) 한국이퍼브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나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p15
 모든 순간에는 끝이 있다. 매일 달리는 일의 즐거움은 매일 끝까지 달리는 일이다. 달리는 동안에 괴로움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지만 끝까지 달리고 나면 기쁨이 찾아온다. p34

 

이 산문집의 핵심은 초반부에 모두 적혀있다!

인생은 달리기 하는 것과 같다. 결승점이 있는 마라톤처럼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끝은 있고,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긴 여정을 혼자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변에 아름다운 풍경도 있고 고마운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패배자,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인생에는 패배자도 낙오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 다른 인생을 살뿐.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내가 듣기의 달인이 될 필요는 없다. 주의 깊게 듣든, 딴생각을 하든 그저 그분들 앞에 가만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척하고 있어야 한다. 그분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나는 다른 생각을 한다. 딴생각에 빠진 아들 앞에서 평생 말해야만 하는 몫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처럼 말할 때, 부모님은 외롭게 말하고 있는 중이라고. p59

다른 사람의 논리와 흐름에 제 생각을 맞춰야만 하는 고된 소통보다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자유를 선호하게 했죠.
-《그레이트 하우스》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

 

재미있는 구절이다.

어쩔 수 없는 세대차이인 걸까? 부모님이 말씀하실 때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혼나기 싫어서 듣는 척 연신 알겠다고 대답을 했고 좀 더 크고 나서는 부모님께 대들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 척했으면 좋았을걸 싶다. 싸운다고 해서 세대차이가 좁혀지는 것도 아니고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부모님 뿐이겠냐. 직장 동료나 상사와도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논리에 맞춰 대화를 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들과는 대놓고 싸울 수도 없다. 세상 사람들 중에 나랑 말이 통하고 서로의 의견에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아주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난 늘 기쁨의 도취 속에서 살고 있어, 특별한 이유도 없는데 말이야.
-로자 룩셈부르크-

 

작가의 말에 의하면 우리를 기다리는 행복과 기쁨이란 건 세상에 없다고 한다. 찰나의 순간에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감옥소에 수감이 되어도 늘 기쁨의 도취 속에 살았다는 '로자'처럼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지금 이 순간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하게 살아가야겠다.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191

아직도 종로서적이 거기 남아 있다면, 늙으신 아버지와 함께 가서 책을 골라볼 텐데. 그러면서 그게 아니라, 소설가가 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위로받고 싶어서 거기로 간 것이라고 털어놓을 텐데. p217

 

고독은 외로움과 달리 멋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결코 혼자 살 수 없다. 나는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여러 글을 읽어보아도 결국은 사람과의 사랑과 추억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부모님과의 의사소통에는 종종 실패했지만(ㅋㅋ), 나는 그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을 느꼈다. 대학 시험을 망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렀던 종로 서적에서 그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들의 바람대로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위로를 건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