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마이클 샌델이 2005년에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한 《정의》의 비디오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샌댈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내용을 좀 더 생생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학생들에게 철학 강의를 통해서 우리 삶에 익숙한 정치나 도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환기하도록 했다. 필자 역시 사회적 화두가 되었던 쟁점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나아가 자신에 대한 반성과 도덕적인 삶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강의는 쉽게 답을 내기 어려운 도덕적 문제를 예시로 시작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일명 '리차드 파커' 사건*은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 리처드 파커 사건:: 영국에서 호주로 가는 배에 탔던 4명의 선원들이 난파한다. 이후 통조림 2개로 버티다가 극한 상황에 이르자 선원들은 그들 중 병에 걸린 리처드 파커를 죽이기로 합의하고 세 사람만 살아남는다. 세 명의 생존자는 영국으로 귀환하여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이 문제를 통해 우리는 최대의 사회적 효용을 가져오는 행복을 핵심 명제로 하는 공리주의와 개인의 권리(기본적인 자유권)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공리주의 사상에는 절대다수의 행복이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개인의 생명 혹은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고 이에 맞서 개인의 기본권을 주장하는 자유지상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정의는 특정한 도덕적 요구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것을 집단적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효용성은 다른 무엇보다도 크고,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의무인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개인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권리들은 강력하고 광범위해서 국가가 할 일이 존재하는지,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로버트 노직-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인권 개념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논의하면서 발전했다. 로버트 노직은 재분배를 위한 세금 징수는 노동이나 생명을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가가 개인에게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고 내 노동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일부 소유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즉 내가 온전한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뜻과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산권에 대해 존 로크는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재산은 자연적인 것(정부탄생 이전부터 있었던)이면서,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제도적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벗어나 처음으로 정부를 만들었을 때에 그 사회 구성원들이 정부에 대해 합의를 했고, 동의에 의한 세금 부과는 합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존 로크의 자연법은 자유지상주의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의에 의한 국가(민주 국가)의 사유재산권 침해는 정당하다고 보았다.
존 로크는 재산권 이외에도 생명권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시민의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자연 상태는 자연법이 지배하는데, 이 자연법은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 법은 이성인데, 모두가 참고하는 이성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누구도 타인의 생명, 건강, 자유, 재산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존 로크-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
모성도 매매가 가능한가?
불임 전문병원을 찾은 스턴 부부는 불임센터에서 만난 대리모와 다음과 같은 계약을 했다. 대리모는 인공수정을 하고 그 아이를 출산한 뒤에 스턴 부부에게 건네는 것에 합의했다. 하지만 대리모는 출산 이후 마음을 바꿨고, 아이를 자신이 키우고 싶다고 했다. 이 재판은 계약을 이행해야 할까?
결론:: 이것은 아이의 매매와 같다. 적어도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권리를 매매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어떤 이상적인 동기를 가졌든 이 계약을 장악하고, 궁극적으로 지배하는 건 이윤 동기이다. 그리고 잘못된 합의나 충분한 정보에 대한 논쟁과 관계없이 문명화된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대리 출산의 경우 대리모가 두 아이를 출산해본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돈 때문에 아이를 낳고 넘겨줄 때의 심정을 알 수 없다. 그녀가 처음 계약을 할 때 이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정보 없이 합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법정은 대리모가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철학자 앨리자베스 앤더슨은 이 계약에서 대리모는 본인이 느끼는 모성애를 억누르라고 강요당했고, 이 대리 출산 계약이 여성의 출산을 소외된 노동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대리출산은 임신이라는 사회적 행위가 마땅히 추구하는 목적에서 벗어난 출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목적은 바로 아이와의 감정적 유대감이다.
우리 사회는 자발적인 동의 혹은 민주적 절차가 있다 하더라도 위의 예시처럼 모성애를 매매할 수 없듯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정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알아봐야 할 철학자는 칸트이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철학자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개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지 말아야 하는 정언적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칸트에 따르면 내가 자유로울 때는 내 의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에게 법칙을 부여할 때뿐이다. 자율로서의 자유를 가리면 우리의 행동은 외부에서의 부과된 법칙이 아니라 스스로 부과한 법칙을 따르게 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법칙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이성이다.
나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인간을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마라. 인간을 언제나 목적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행동하라 -칸트-
하지만 칸트의 이성(정언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도덕성 이론은 난제에 봉착한다. 가령 살인자가 당신 집에 숨어있는 친구를 찾아왔다고 치자. 그 살인자가 당신 집에 친구가 있는지 물으면 어쩌겠는가? ->이에 대한 유일한 탈출구는 호도성 진실이다. 살인자에게 친구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친구가 정확하게 옷장 안에 있을지 화장실에 있을지는 알지 못하지 않은가? 엄밀하게 말하면 사실이다. 이는 진실을 말해서 도덕법을 존중하되 상대에게는 오해를 일으켜서 친구를 구해낼 수 있는 묘수인 것이다.
**능력주의에 정의는 없는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해서 우리는 어떤 원칙에 합의할 것인가?
미국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146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배경, 특히 경제적 배경을 연구해 보았다. 가계수입이 하위 25퍼센트에 속하는 학생 비율은 얼마였을까? 불과 3퍼센트만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고, 70퍼센트 이상이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다고 한다.
위의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능력주의 사회에서조차도 사회적 우연성이나 성장환경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타고난 능력과 재능, 혹은 출신 배경에 따라 부와 소득의 분배가 결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패널티를 주어서 불리하게 만들어야 할까? 그것은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롤스는 재능 있는 사람이 재능을 발휘하도록 사회가 허락하고 장려하되, 그 재능으로 거둔 결실(혜택)을 가져가는 데에는 어떤 자격조건을 부여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차등의 원칙이다. ->운 좋게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능력주의 원칙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을 돕는다는 조건 말이다.
능력 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노력한만큼 받는 것이 보상'이라는 점에 대해 살펴보자. 예를 들어 건설 현장에 두 인부가 있다. 건장한 인부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한시간에 벽돌을 네 개나 거뜬히 쌓는데, 약하고 왜소한 다른 인부는 똑같은 일을 하는 데에 사흘이나 걸린다고 하자. 과연 이 경우 왜소한 인부가 더 노력했으니까 돈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결과에 따라 건장한 인부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지 않을까?
위의 예시처럼 능력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노력이 아니라 사회적 공헌이다. 아무리 노력한들 소득 분배의 도덕적 기준은 '얼마나 많이 공헌했는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력과 보상에 대한 도덕적 자격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수입과 부의 문제를 넘어서 기회와 명예의 문제는 어떨까?
일류대학 진학의 기회를 분배하는 문제는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끝까지 재능을 계발해서 하버드에 입학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잡았던 수많은 기회와 혜택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금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것을 노력에 대한 포상이나 명예로 볼 수 있을까?
나는 왜 불합격인가? -소수집단 우대정책 논쟁-
셰릴 홉우드 소송사건- 그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와 지방 전문대를 진학했고 현재는 텍사스 주립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지망생이었다. 그녀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텍사스 주립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지망했으나 탈락하고 말았다. 당시 텍사스 주립대학이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입시정책을 썼기 때문이었다. 홉우드는 자신이 백인이라서 떨어졌다며 항의했다. 자기가 소수집단이었다면 그 졸업평점과 시험성적으로도 충분히 합격했을 거라고 말이다.
나는 이 논쟁에서 다양한 의견들을 접하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재고하는 기회를 가졌다. 얼핏 보면 셰릴 홉우드가 소수집단 우대정책 때문에 역차별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지지하는 근거를 크게 3가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그동안의 교육 여건의 격차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소수집단은 출신학교와 교육에 대한 기회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단순한 시험 결과는 학습적 잠재능력을 평가하기에 부족하다. 둘째, 과거에 자행된 흑인, 유대인 차별과 같은 잘못된 행위, 역사의 부정의를 보상하자는 논거이다. 셋째, 대학의 모든 학생의 교육적 경험을 위해서 학생층을 다양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다양성입니다. 학업성취도만이 하버드대학의 유일한 입학 기준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15년 전에 다양성이라는 말은 캘리포니아, 뉴욕, 매사추세츠에서 온 사람들, 도시 거주자와 농촌 자녀, 바이올리니스트, 화가, 축구선수, 생물학자, 역사학자, 고전학자를 의미했지만, 지금이 그때와 다른 점은 오직 다양성을 고려한 이 긴 목록에 인종족, 민족적 지위가 추가된 것뿐입니다. 우리 학교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응시자를 검토할 때 인종이라는 요소도 아이오와 출신의 수비수 혹은 피아니스트인 것처럼 가산 요인이 됩니다. 보스턴 출신이 하버드에 하지 못하는 공헌을 오히려 아이다호 농장 출신이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흑인학생은 백인학생이 못하는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생이 체험하는 교육의 질은 학생들 간의 배경과 사고방식의 차이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하버드 대학의 논거-
동성 간의 결혼을 논의하다
정의와 좋은 삶
- 동성혼을 반대하는 근거- 결혼의 목적은 아이의 양육과 출산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동성혼을 국가가 권장할 의무는 없다.
- 동성혼을 찬성하는 근거-이성 간 결혼이라도 자식을 낳을 생식능력이 없을 수 있고 출산과 상관없을 수 있다. 그리고 종교적, 도덕적 신념이 다른 다원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므로 국가는 다양한 종교적 이견들을 존중하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
- 마지막으로 결혼을 인정하는 일 자체가 국가의 역할이 아니다는 주장도 있다.
** 이 문제에 대해 매사추세츠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결혼의 정의를 동성의 배우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결혼의 목적은 출산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독점적이고 영원한 약속이 바로 결혼의 본질이자 목적이다."
"실제로 시민 결혼(civil marriage)에는 세 명의 공조자가 있다. 배우자가 되려는 두 사람과 그것을 승인하는 국가다. 결혼은 상대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약속인 동시에 상호관계, 동반자 관계, 친밀함, 충실, 가족이라는 이상에 대한 매우 공적인 축하이다." -이 판결은 자유주의적 중립성을 훌쩍 뛰어넘었다. 결혼을 명예로운 사회적 공인의 형태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13주간의 강의에서 마이클 샌델은 학생들이 철학을 통해 사회 문제, 일상생활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는 동료 시민들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존중한다는 생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신념을 배제하고 정치적 논쟁을 진행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철학이나 도덕, 종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논쟁하며 더 나은 삶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책 말미에 동성혼에 대한 재판 사례는 정치가 사람들의 도덕적, 종교적 신념과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는 점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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