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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토르 E. 프랑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프랭클 출처:yes24

저자 소개:::

 

 빅터 프랭클은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이며 미국 인터내셔널 대학에서 로고테라피를 가르쳤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학파를 창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3년 동안 다카우와 다른 강제수용소가 있는 아우슈비츠에서 보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제수용소를 체험한 심리학자」라는 책으로 1946년 출판하였다. 그리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그의 대표작이다.

 

줄거리 및 감상::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의 특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자신을 구하는 수단이 된다. p119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참고 견딜 수 있다.-니체 p124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과 계속 살아남아야 할 책임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 대해, 또는 채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을 느끼게 되면 결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질 수 없을 것이다. p129

 

 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면서 이전에 보았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여주인공이 떠올랐다. '베로니카'는 삶의 권태로움 때문에 자살을 결심한다. 절망이나 고통 때문에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나 설렘이 없어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절망 가운데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희망이 보이면 살아갈 이유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현재 고통받는 것이 헛되지 않고 언젠가 미래에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미래에 만날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자살에 실패하고 난 후, 정신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인도 다른 이들처럼 사랑에 완전히 빠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묘사된 죄수들의 감정 상태를 보면 충격과 공포-> 냉담-> 체념 순으로 진행된다. 이들은 주위 동료들의 죽음에도 점차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자신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오히려 죽은 사람의 몸에 있는 쓸만한 물건을 찾느라 서로 싸우기까지 한다. 오직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생사만 걱정하며 지낸다. 이후 체념의 단계에 이르면 죄수들은 아무리 협박이나 구타를 당해도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린다. 왜냐하면 삶에 대한 미련이 없고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용소에서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그가 죽고 나면 남겨질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뜻밖에 찾아 올 행운(수용소에서의 해방)등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그리고 내 삶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지 않더라도 나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나의 가족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따뜻해졌다. 

 

인간의 자유란 주위 상황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주위 상황에 대하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자유이다. p194
수용소에서의 삶이 사람들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서 파헤치고 그 깊은 곳까지 들춰냈다

 

 위에 인용문에 나와 있듯이 수용소처럼 극한의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자신의 본성을 마주하게 된다. 독특하게도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수용소에 있는 죄수들마다 달랐다. 이 책에서는 그들이 돼지와 성자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설명한다. 하루에 배급받는 식량의 양은 매우 적고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신발끈이 없어 철사줄로 겨우 신발을 동여매고 강제 노역을 하러 나가는 생활을 하다 보면 '카포' 즉 나치의 개가 되어 다른 죄수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면서 조금 더 많은 배식량을 얻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성자처럼 구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식량을 몰래 감추었다가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몰래 건네기도 하고 강제 노역에 지친 사람들을 부축해서 감시자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도와주기도 한다.(*강제노역 중 제대로 서있지 못하면 감시자는 죄수를 쓸모없다고 여겨 가스 처형실로 보내버린다.) 

 이것을 보고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결정적인 존재이며 주어진 환경, 재능의 범위 안에서 어떤 인간이 되었는가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아들러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 경험의 기억은 모두 다르다고 말하는데 빅터 프랭클 역시 수용소에서 지내면서 개인의 의지에 따라 수용소의 경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보고 있다. 

 

 책의 후반부는 빅터 프랭클가 창시한 로고테라피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에게 발생한 문제를 삶의 의미 상실에서 찾는다. 다음은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했다.

인간의 주된 관심은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는 것이 로코테라피 기본 신조 중의 하나이다. 바로 그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확신하면 기꺼이 그 고통을 받아들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p175

 

 빅터 프랭클은 이 심리치료를 통해 수용소에 있던 수감자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힘을 보태주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2차 세계대전이 1939년-1945년 동안 벌어진 일이므로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1910년-1945년)와 시기가 비슷하다. 당시 우리나라도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시민들이 서대문 형무소 등 감옥소에 갇혀있었다. 빅터 프랭클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감옥에 수감됐던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고통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본인의 생의 의미를 나라의 독립에 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해방이 되어 감옥소에서 풀려날 그날을 생각하며 그들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견뎌냈을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도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아래에 첨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물질의 풍요, 건강, 가족을 꼽았다. 나는 1위가 물질적 풍요라서 놀랐는데, 다른 순위의 가치들과 근소한 차이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음의 가치들 가운데 중복투표가 가능한데 한 가지에만 투표를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고민해보았다. 일단 나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에 대한 나의 사랑도 비례하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사회적 관계)이다. 내가 여기에 글을 쓰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지속적으로 관계 유지를 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 삶에 만족하고 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행복은 부가적으로 따라온다. 따라서 본인의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보고 그 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삶을 살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출처: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20382.html

 

삶의 의미 어디서 찾냐 묻자…한국인만 이걸 1위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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