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소개::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채식주의자(2007)」,「바람이 분다(2010)」, 「소년이 온다(2014)」, 「흰(2016)」를 출간했다. 한국소설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받았고, 「채식주의자(2007)」로 한국 작가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줄거리 및 감상::
「희랍어 시간」은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찰나 혹은 기억의 순간들을 시처럼 아름답고, 적절한 비유들로 채운 느낌을 준다.
소설 속 여자는 이혼 후 아이의 양육권을 뺏기고 말을 점점 잃어간다. 소설 속 남자는 독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중에 고국으로 돌아와 희랍어 강의를 한다. 여자는 열일곱 살에도 침묵했던 경험이 있다.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언어들이 소름 끼치고 싫었던 것이다. 그녀는 뜻밖에도 평범한 수업시간에 평범한 불어를 통해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도 새로운 언어를 통해 그녀의 침묵을 깨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희랍어 강의를 들으러 간다. 그곳에서 빛을 잃어가는 한 남자를 만난다.
소설의 대부분은 남녀의 독백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회상하는 내용이다. 회상씬들은 마치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일기나 메모처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들 안에 있는 고독과 슬픔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스스로 세상과 벽을 쌓고 침묵과 어둠에 빠져들었다. 남자는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의 세계를 잃어갔다. 그 둘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장면을 통해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우리들도 위로받는다.
오랜 시간 더디 진행되어온 일이므로, 마음의 준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허락받은 담배를 가능한 한 오래 피우는 죄수처럼,
볕이 좋은 날이면 집 앞 골목에 나가 앉아 긴 오후를 보낼 뿐입니다. p38
이 세상에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없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물들은 존재한다. 우리는 매일 그 세계를 바라보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매일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이 세상의 모습을 눈에 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할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과 고요함이 그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두려움이 되기도 하는 모습을 본다. 그의 옆에서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언젠가 그들이 서로에게 입과 눈이 되어 줄 날이 올 수 있을까.
** 빛을 잃어가는 남자는 현실 속의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는 대신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없는 절대적인 아름다움만을 믿는 사람이 되어 갔다. 현실 속에 없는 아름다움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빛을 잃기 전 기억에 남아있는 세상 속 아름다움일까?
가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우리 몸에 눈꺼풀과 입술이 있다는 건.
그것들이 때로 밖에서 닫히거나,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길 수 있다는 건. <p161>
우리들의 세계는 언제나 우리의 내부에서든 우리의 바깥에서든 잠길 수 있고 그런 서로를 보듬어주며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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