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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작가 소개**

김지연 작가는 2018년 「작정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제12회, 제13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 감상 **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 중에는
가족들의 모습이 꼭 끼어 있었다.
가족들을 사랑하는 건 이미 주어진 일 같은 거였는데,
그 사랑을 이어가는 일, 계속해서 사랑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p323

 

 마음에 없는 소리는 단편 소설집이다. 그래서 각 챕터마다 주제와 등장하는 인물이 달라지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소설끼리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며 성적 소수자 혹은 공동체에 적절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소설 속 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이미지 역시 따뜻하거나 주인공을 환영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 대상을 사랑함과 동시에 주인공 마음속에는 지긋지긋하고 낡은 '가족 혹은 고향'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가족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에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사는 최초의 타인이며 살을 부대끼고 지낼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족이고 함께한 세월의 정 역시 무시하기 힘들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둘까지 합쳐 총 여섯 식구였다. 요즘은 식구가 많아야 네 명 보통 세 명이니 사람이 많기도 했고 그만큼 바람잘 날 없었던 것 같다. 고부 갈등을 눈앞에서 직관했고, 어린 나이에 집안 분위기가 냉랭한 것을 견디기 힘들어 분위기 메이커 노릇도 자처했다.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하면 마음이 불안해져 어린 동생 둘을 업고 동네 꼭대기에 있던 교회를 찾곤 했다. 물론 불행했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즐거웠던 추억도 분명히 있다. 온 가족이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을 싸들고 북한 산성에 가서 계곡에서 물놀이 하고, 할머니 따라 쑥을 캐기도 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각종 운동회나 졸업식마다 함께해 준 부모님과 동생들. 그래서 행복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 속에 가족들의 모습이 꼭 들어있다. 나는 당당하게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떨 때는 그 마음이 의무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여성처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어가는데 노력이 필요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왜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생각했다. 가족에 대한 정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학창시절의 좋은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가친척에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곳이긴 하지만 어차피 무직이 된 김에 월 삼백짜리 취직도 시켜준다 하니 속는 셈 치고 콧바람이나 쐬러 간 것일까? 

 그리고 고향에서 그녀는 학창 시절 자신을 미워했던 친구와 재회한다. 갑자기 친한척 말을 걸어오는 그 친구를 모른 체 하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 마디 나눈다.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서 그 친구와 만나 뜬금없이 회포까지 풀게 된다. 친구는 그녀에게 학창 시절에 너를 미워했었노라 고백하고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릴 때에,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미움만 받았던 기억은 도무지 지워지지가 않았다.
상처가 됐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p86



나도 어릴 때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들이 있다. 요즘은 고등학교 때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국민학교 다닌던 시절은 정말 까마득하다. 그래도 국민학교 시절, 친구에게 무시받았던 기억은 도무지 지워지지가 않는다. 나는 덩치도 작고 소극적인 편이었다. 키도 크고 성깔도 있어서 일진 언니들과 잘 어울리던 친구는 자기가 기분 나쁘면 내키는 대로 행동했었다. 그래도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동네 친구였는데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내 뺨을 때렸다. 장난 비슷한 행동이었으나 나는 충격을 받았고 그 기억은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후로 그 친구와는 멀어졌다. 이 일로 친구에 대한 여러 가지 가치관이 나름대로 자리잡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마음의 상처는 흔적이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제는 미래 쪽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래에는 나를 위한 자리는 없을 것만 같았다.
p233

 

 행복한 일이 계속 일어나면 처음처럼 마음이 기쁘지 않다. 그렇듯이 불행한 일도 계속 겪으면 처음보다 태연 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행복한 일은 즐거움의 연속이니 그 마음이 계속 똑같이 방방 떠있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불행한 일은 태연해진 것처럼 구는 것이니 마음이 점점 쪼그라든다. 미래가 없는 것처럼 굴고 외부 반응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악감정들을 온몸으로 울면서
모두 죽여버린 기분이었다. 때로 울음이 정화인 것은 어떤 살해에 성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p272

 

눈물은 참 신기하다.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앙금을 녹여버린다. 그래서 슬플 때 혹은 힘들 때는 엉엉 우는 것이 도움이 되나 보다. 

 

 **단편 소설 속 주인공들은 크고 작은 슬픔들 때문에 죽고 싶은 이유를 헤아린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고 삶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침이면 일어나 허기를 느끼고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포만해지는 게 사람 아니냐'(p281)는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우리는 생명의 가치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고귀하다고 배운다. 하지만 그것을 가치 없게 여기고 스스로를 헤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가. 생명에 대해 거창하게 논하지 않더라도 사소한 이유 하나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지금 먹는 이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살아있기를 잘했다 같은 (p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