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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출처: yes24

::작가 소개::

김영하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작가가 되리라고 생각 못했지만 1990년대 초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가 인기를 끌자 자신이 작가적 재능이 있음을 깨달았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실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등 외에 산문집도 다수 있다. 

::감상::

쓰인 모든 글들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리라.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니체의 글을 종종 인용하고 있다. "타인의 피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나는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타인과 나 사이에 심연이 존재한다고 표현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만큼 남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아무리 비슷한 일을 경험해 봤더라도 결국 남은 남이다. 

소설 속 모든 사건은 살인자의 관점에서 시작하고 끝맺는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 공감이나 동정이 전혀 없다. 그가 사이코패스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또한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해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그를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재미있기도 했고. 

 

혼돈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돈이 당신을 쳐다본다_니체

 

살인자는 이제 자신이 쓴 글을 들여다 보아도 도무지 왜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그야말로 혼돈 자체이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그의 세계가 치매 때문에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징벌방에 대한 환상도 갖고 있었다. 나는 처절하게 짓밟힌 채 탈진하여 내가 떠나온 세계, 흙의 세계를 극도로 갈망하며 발버둥 치게 될 것이다. 그 상상은 꽤 짜릿한 쾌감으로 나를 인도하였다. 어쩌면 나는 너무 오랫동안 나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삶에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악마적 자아의 자율성을 제로로 수렴시키는 세계, 내게는 그곳이 감옥이고 징벌방이었다. 48%

 

그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살인을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중에 경찰에게 잡히지 않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반대로 자신의 악마성을 표출하지 못하도록 잡혀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 감옥에 갇혀 명령받고 수동적으로 사는 삶. 

나도 가끔은 양면적인 마음이 들때가 있으니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폭주하는 자아를 누군가 말려주기 바라는 마음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모든 것을 혼자 결정 내려야 하는 피곤함과 책임감은 때론 우리를 압박하기도 한다. 사람이란 참 아이러니한 존재인 것 같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 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어쩌랴, 레일이 끊기면 기차는 멈출 수밖에. 51%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갖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53%

 

현재라는 시간에만 멈춰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이 순간을 즐기자는 표현을 많이 쓴다. 현재의 모습이 쌓여 추억이 되고 미래에 다시 행복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현재에만 속해있으면 그것을 진정으로 즐긴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치매에 걸리면 가까운 과거는 점차 잊히고 아주 오래전 기억만 남는다. 점점 미래가 사라지고 과거로 회귀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  무엇이 즐거운 일인지 혹은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의미 있을까?

 

오디세우스의 여행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64%

 

이 소설책은 정말 단숨에 읽힌다. 문체가 간결해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없고 흥미진진한 사건도 등장한다.

살인자의 기억을 정말 믿어야 할지,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결말까지 내달리게 된다.

하지만 주제는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