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오가와 이토는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다. 2008년 첫 장편소설인 달팽이 식당을 출간했다. 이 책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베트남어 등으로 출간돼 100만 부 이상 발행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0년에 영화화되어 큰 사랑을 받았다.
**감상**
'달팽이 식당'이라는 이름이 귀엽다고 생각해서 읽게 되었다. 왠지 달팽이 식당에서 여러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힐링하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일단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달팽이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요리를 먹고 감동을 받기도 하고 그들의 소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면 주변 인물의 힐링 스토리보다는 주인공 링고(린코)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녀가 달팽이 식당을 여는 과정과 식당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주인공은 내적 성장을 이뤄낸다.
링고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림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 일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집으로 돌아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엄마를 대단히 미워했기 때문이다. 고향집으로 간 그녀는 엄마에게 드릴 월세를 벌기 위해 고민하다가 남자친구와 언젠가 차리려고 했던 식당을 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이름은 달팽이 식당. 그녀는 달팽이 껍데기처럼 작은 이 공간을 등에 메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래서 하루에 한 팀의 손님만 받기로 하고 요리에 정성을 쏟는다. 그녀의 식당에 다녀간 손님들은 제 각기 그녀의 요리를 통해 소원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링고는 점점 삶의 용기를 얻고 자신의 요리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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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너무도 정숙한 외할머니에게 반발해 그것과는 정반대로 파란만장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엄마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반발해, 또 그것과는 정반대인 평범한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p117
어쩌면 모녀는 잘생긴 남자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내게 엄마는 강하고 씩씩하고 심술궂고, 언제나 싸움만 하는 상대였다. 우는 얼굴 같은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평생 불사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p351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누군가를 미워한 시간이 길었다고 하더라도 관계의 끝이 만족스러우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소설 초반부에 링고와 엄마의 관계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연결된 혈연 관계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어린 링고가 경험한 엄마는 겉으로 보기에 문란하고 딸에게 무심했기 때문이다. 객관적 사실이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링고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외할머니는 따뜻하고 정숙해 보였다.
그런데 이 모든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엄마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링고는 충격에 빠진다. 정숙했다고 생각했던 할머니가 유부남과 바람이 나서 엄마를 버리고 떠났었고 그게 미안해서 손녀딸에게 자상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결혼하기로 약속한 남자와 맺어지지 못하고 평생을 처녀로 지냈다. 이런 반전은 링고에게 엄마에 대한 나빴던 기억들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소설 후반부를 읽어보면 링고가 처음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와 달리 엄마에 대해 애정이 담긴 표현을 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모녀지간에 공통점을 찾는다던지 엄마가 죽고 난 후 비둘기의 모습으로 자기를 찾아와 주었다고 생각하는 부분 등이 그렇다.
나는 링고의 엄마가 딸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던 무심하고 못된 엄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고향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엄마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링고의 기억 속에는 딸을 사랑했고 일평생 한 사람만을 사랑했던 순애보적인 엄마만 남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링고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그녀는 엄마의 죽음 이후, 삶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랑했던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를 잃게 되면서 인생에는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훨씬 많다고 느낀다. 그래도 소설 말미에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나 준 엄마 덕분에 그녀는 용기를 되찾는다. 목구멍에 가시처럼 걸려 나오지 않았던 목소리도 다시 나오게 되고 손에 잡히는 행복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 먹는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마주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도 배운게 된다. 따뜻한 소설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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