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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고요한>

출처 : 알라딘

 

마우러 할머니는 정규직일 거야. 그래서 고통을 다 참아냈을 거야. 정규직만 된다면 난 그런 고통쯤은 참을 수 있어.
p 89 
44년간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한 마우러 할머니처럼 우리도 장례식장에서 44년간 일하는 거지. 

 

주인공인 '나'는 어릴 적 잃게 된 누나와 그로 인한 가족의 붕괴로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누나를 잃은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에게 하얀 뱀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하얀 뱀은 불운의 상징 혹은 상처의 흔적과 같은 것이다.  

자책과 상처 속에서 누나를 잃은 슬픔은 제대로 봉합되지 못한 채 시간만 훌쩍 지났다. 그의 마음은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20대 젊은 남녀가 주인공이라 그런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 특히 평생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야 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청계천을 날아오르는 물고기 환상처럼 자신들에게도 꿈이 있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행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오토바이를 타고 밤거리를 활보하는 둘의 모습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의 방황하는 주인공 홀든이 생각났다. 순수하지만 방황하는 청춘들. 나는 일탈하면서도 절대 순수함을 잃지 않는 그들을 보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어렷을 적 대학로와 종로 일대를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 거리의 자세한 묘사가 노스텔지어를 생기게 했다. 

 

조문을 다니면서 히로시는 예전보다 죽음을 덜 두려워했어.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해 무척 죽음을 두려워했거든. 빨간색 옷을 입고 다니는 것도 죽음이 두려워 서고.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삶의 끝에 죽음이 있듯 만물에도 시작과 끝이 있다는 걸 깨달았나 봐. p127
내가 친해져야 할 친구는 이제 죽음밖에 없거든. p145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일찍이 죽음을 경험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삶 속에서 스며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임종체험 등 의 시간을 갖는다. 자칫 어둡기만 할 수 있는 주제를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이 인상깊었다. 죽음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한다. 잠시 잊고 지낼 뿐. 

그래도 산 사람들은 상처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마리랑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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